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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금융클래식에 출전해 티샷 하는 최재희 | ||
2013 한화금융클래식에 초청선수로 출전해 2라운드 합계 27오버파 171타를 적어내 꼴찌로 예선 탈락한 최재희(17.보영여고2)는 골프를 시작한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국대회에서 수 차례 금메달을 따내 장래가 촉망되는 장거리 스케이트 선수였던 최재희가 골프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물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오빠 조차 힘들다고 말렸다. 하지만 오빠가 독차지하던 아빠의 사랑을 돌려 받으려는 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저는 처음부터 골프선수를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아빠가 연습장에 데려다 놓고 '재미있게 놀아라' 하시면서 오빠한테 가는데 정말 속상했어요. 먼저 골프를 시작한 오빠가 시합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릴 때면 '넌 왜 그렇게 못하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어요."
골프를 하면 오빠에게 빼앗긴 아빠의 사랑을 돌려 받을 줄 알았던 그에게 아빠는 여전히 무관심했지만 볼 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흥미를 잃었다. 그런 그에게 오빠의 군 입대로 변화가 찾아왔다.
"오빠가 프로가 되고 아시안투어 시드까지 획득해 1년간 투어선수로 활동하다 해병대에 입대했어요. 그때부터 아빠의 관심이 저한테 쏠리기 시작했죠."
아빠의 빈 자리를 차지한 그는 열심히 골프를 했다. 더디게 늘던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했고 중고연맹 대회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에게 2013 한화금융클래식 출전이란 기회가 왔다. 더구나 '꿈의 무대'인 미 LPGA투어 정상급 선수인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 지은희(27.한화) 등이 참가하는 메이저급 대회였다.
최재희는 대회 첫날 6오버파를 적어내고 하위권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맛 봤다. 가슴이 마구 설렜다.
대회 2라운드. 메이저급 대회답게 이른 아침부터 수 많은 갤러리가 찾아와 1번홀 티박스를 둘러쌓다. 선수 소개가 있자 첫날 보다 더한 긴장감이 몰려왔다. '어제보다 잘 해야 할 텐데….'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남이 들을까 창피했지만 1번홀 티샷이 경쾌한 타구음을 내며 페어웨이 중앙을 갈랐다. 열일곱 소녀지만 장타자인 그는 두 번째 샷을 100미터 남겨 놓았다. 내심 버디를 노렸고, 잘만 하면 본선 진출에 성공 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그러나 두 번째 샷 다운스윙을 하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왔고 쌩크가 났다. 수 많은 갤러리가 쳐다보는 상황에서 최재희는 어쩔 줄 몰랐다. 더블보기를 하고 2번홀 티잉 그라운드로 향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2번홀을 파로 마쳐 새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3번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해 3개 홀에서 5타를 잃었다. 타수를 만회할 수 있는 파5홀인 4번홀에선 티샷이 왼쪽으로 감기며 OB(아웃 오브 바운스)가 났다.
"OB가 나는 순간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그래서 똑같은 방법으로 쳤죠. 또 OB가 났어요. 다섯 번째 샷 만에 페어웨이에 볼을 안착시켜 13타 만에 홀 아웃 했는데 골프 배우고 처음이었어요. 정말 창피하고 쥐구멍이라도 찾아 기어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열일곱 소녀는 금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저 정말 못 쳤죠. 자신감 키우려고 나온 대회인데 이제 어쩌죠."라고 되묻는다.
프로를 지망하는 선수가 한 홀에서 13타를 기록하는 것은 수치다. 하지만 최재희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긴장 때문인지 첫날부터 드라이버 샷이 흔들리면서 티박스에 서면 볼이 어디로 갈 지 몰라 불안했어요. 둘째 날 1번홀에서도 잘못 맞은 샷이 똑바로 가고…. 4번홀 티샷을 OB 내고 여기서 샷을 잡지 못하면 앞으로 자신감을 잃는 건 물론 드라이버 입스까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드라이버를 잡기로 했죠. 두 번째도 OB를 냈지만 세 번째 티샷을 똑바로 보내 적어도 입스에 시달리지는 않을 수 있었잖아요. 앞으로 프로 테스트도 봐야 하고 선수생활도 오래 해야 하는데 그 홀에서 샷을 잡은 건 그나마 제겐 큰 행운이죠."라며, "기자님! 이번 대회 교훈 삼아 열심히 할 테니 꼭 지켜봐 주세요."라고 한다.
경험과 함께 자신감을 쌓으려고 출전한 프로대회에서 비록 출전 선수 중 꼴찌라는 불명예를 맛봤지만 그는 자칫 모든 걸 한 순간에 잃을 뻔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소중한 꿈을 계속 키우게 됐다. 그와 짧은 시간의 대화였지만 기자는 2~3년 후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새로운 '슈퍼 스타' 탄생을 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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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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