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골프(KPGA)가 술렁이고 있다. Q스쿨에서 번번히 미끄럼 탔던 세미프로가 정회원 중에서도 쟁쟁한 실력자들이 모인 KPGA 챌린지투어에서 2011시즌 2승과 역대 최고액 상금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300야드가 넘는 장타와 정교한 숏게임을 갖추었고 퍼트까지 일품이란 소문이 자자하다.

'누구지?'라는 궁금증은 정준영(25)이 연습하고 있는 곳을 찾았다. 미리 약속을 한 것이 아닌 무작정 방문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알고 지내는 프로의 클럽을 빌려 연습볼을 쳤다. 5분이면 온다는 그는 15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왜 안 와?" "저 여기 와 있는데요. 연습볼 치고 있으셔서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제가 정준영입니다." 훤칠한 키에 선명한 이목구비.... 괴물인줄 알았는데 꽃미남이다.

▲ KPGA 챌린지투어 역대 최고 상금왕 정준영(25)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했던 정준영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프로야구선수를 꿈꾸던 그는 중학교 2학년이 되던 2000년 KPGA 세미프로 아버지 정해심(51)씨가 근무하던 골프연습장에 놀러 가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움직이지도 않는 공을 하루 종일 친다는 게 지루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야구처럼 뙤약볕이 아닌 그늘에서 운동하는 모습은 부러웠습니다."

용돈 타러 연습장에 놀러 가는 횟수가 많아지며 골프를 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단체운동인 야구와 달리 자유로운 모습에 매력을 느낀 그는 야구 시작한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골프를 하겠다며 몇 날 며칠을 아버지를 졸라댔다.

평소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라고 말했지만 아들이 갑자기 골프를 하겠다니 정씨는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야구는 단체운동이라 실력이 조금 모자라도 커버가 되는데 골프는 개인운동이라 완벽에 가까워야 성공 할 수 있잖아요."

야구배트에서 골프채로 바꿔 잡은 지 3개월 겁 없는 정준영은 첫 시합에 출전한다.

"기본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대회에 나가 119타를 치고 꼴찌를 했어요. 그땐 너무 황당하고 창피했어요. 당연한 결과인데 말이죠.(웃음~) 그때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제 전화번호 뒷자리가 119번이에요."

"해외로 겨울전지훈련까지 가서 열심히 연습하고, 중고연맹 대회에 꾸준히 참가했지만 예선을 통과한 것은 단 두 번뿐이에요. 그렇게 고3이 됐는데 경험 삼아 세미프로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근데 덜컥하고 한 번에 통과 했어요. 그러면서 주위 분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세미프로가 되어 챌린지투어에 나갔지만 지역예선조차 통과하기 힘들었고, 정회원이 되기 위해 Q스쿨에 응시했지만 매번 탈락했다. 가능성이 없는 것 같았다. 허송세월 보낼 바엔 차라리 군대나 일찍 같다 오자는 생각으로 2007년 겨울 군에 입대했다.

"단체운동인 야구를 해서인지 군대 생활에 잘 적응했어요. 재미도 있었고요. 군생활 2년 동안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워 2009년 제대 후 Q스쿨에 도전했지만 또 떨어졌어요."

▲ 정준영의 드라이버 임팩트. 평균 300야드의 비거리 갖추고 정확도까지 겸비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지난 겨울 전지훈련을 간 그는 스윙과 구질을 바꿨다. 그리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2011년을 맞았다.

2011시즌 챌린지투어 1회 대회 지역예선에서 꼴찌로 본선에 참가해 첫날 7위에 올랐지만 둘째 날 78타를 치며 무너졌다. 2회 대회에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 첫날 7언더파를 몰아쳐 단독선두에 올랐다.

"첫날 경기가 끝나고 집에 와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버지께선 우승을 못 해도 좋으니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을 맘껏 쏟아 붓고 오라고 말씀 하셨어요.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둘째 날 비가 많이 왔어요. 한번 해 보자는 생각에 매 홀 집중하다 보니 18홀 경기가 끝났습니다. 말 그대로 무아지경의 골프를 쳤던 거죠.(웃음) 나중에 우승한걸 알았는데 믿기지 않았어요."

▲ 10회 대회에서 우승하며 시즌 2승을 챙긴 정준영

챌린지투어 시즌 마지막 10회 대회에서 그는 다시 한번 우승의 기회를 잡았다. 최종라운드 18번홀 1.2m 버디 퍼팅....

"역전에 성공했는데 11, 16번홀 보기를 범해 공동선두가 됐어요. 18번 홀에선 두 번째 샷을 핀에 붙였는데 내리막 라인에 1.2m 버디 퍼팅인 겁니다. 자신 있는 샷 중 하나가 퍼트였지만 볼을 놓는 손이 동반자가 보일 정도로 엄청 떠는 겁니다. 나를 믿자며 퍼트를 했습니다. 1.2m 밖에 되지 않는데 왜 그렇게 오래 굴러 가는지....(웃음) 극도의 긴장과 압박 그리고 홀인이 되었을 때의 짜릿함....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Q스쿨에서 번번히 탈락의 고배를 마시던 세미프로가 2부 투어인 챌린지에서 2승과 함께 꾸준한 성적을 내며 34,478,000원을 획득, 역대 최고액 상금왕에 등극했다. 역대 상금왕은 정회원들이 차지해 시드를 얻어 코리안투어로 직행했다. 그러나 정준영은 준회원이기에 정회원 특전으로 만족하고 시드전을 치러야 한다.

"4라운드 동안 언더파를 쳐야 시드를 확보할 수 있어 부담이 되지만 챌린지 상금왕이 정규투어에 직행하지 못한 전례가 없어 열심히 준비해 내년 정규투어에 꼭 진출해 우승과 함께 신인왕을 차지하고 싶습니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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