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오후….
여행이란 삶의 재충전을 위한 휴식….
그러나 내겐 지난 삶을 되돌아 보는 또 다른 만남….
 

▲ 만 4년째 살고 있는 반창의 원룸. 조용하고 임대료도 저렴하다.

태국 동부해안의 대표적 휴양지 파타야와 중공업도시 라용의 중간에 위치한 ‘반창(Banchang)’은 작은 시골마을이면서도 외국인 거주자들이 많아 고급전원주택들이 즐비하다. 작은 원룸을 임대해 만 4년을 체류하며 태국을 비롯 주변국들을 뻔질나게 드나든 덕에 여권의 비자면이 부족해 새로 발급받고도 출입국 도장이 여권의 절반을 채웠다.

골프 치러 들락거린 태국에 잘못된 정보들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것을 보고 여행자들에게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현지취재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한국에 인터넷신문사를 설립, 현지에 체류하며 주변국을 방랑자처럼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발자국을 남긴 덕분에 여행자들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문화를 접하고 그들의 삶과 함께 하며 지난 시간을 보냈다.

현지에서 눈으로 보고 체험한 정보를 준비하고 확실하지 않거나 미흡할 땐 또 다시 방문했기에 정확했고, 여행사와 게스트하우스 등 여행업 관련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여행자 입장의 독자적인 취재를 했기에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와 블러그의 진실과 허구를 알았다. 멀티미디어시대에 사진과 글로만 알리기에는 아쉬움이 많아 방송용 HD영상 카메라를 준비해 영상에 담아 세계처음으로 HD고화질 영상을 인터넷에서 여행자들이 무료로 볼 수 있게 했다.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채 태국 철수를 준비하는 동안 일이 꼬여 하루 이틀 넘기다 보니 체류기간 90일이 다 되어 비자클릭을 위해 준비 없는 여행을 떠나야 했다. 비자연장전문여행사를 통해 반나절 만에 다녀 올 수 있는 캄보디아 보다는 길지만 짧았던 지난 시간에 마무리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을 넝카이로 택했다.

라용에서 출발하는 직행버스가 반창과 파타야를 거쳐 넝카이를 가기 때문에 교통편은 불편이 없지만 버스를 타고 13시간을 가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넝카이는 몇 번 다녀왔던 터라 낯설지 않지만 이번엔 혼자이기에 외로움을 벗삼아 간다.

반창에서 저녁 8시 20분 버스를 타기 위해 태국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친구의 고향이 넝카이라 내가 그곳에 가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즐거워 보인다. 버스가 중간 정류지인 파타야 끄랑에 도착하자 험상 궂게 생긴 현지인이 두 손에 커피잔을 받치고 나를 찾아 와 웃으며 커피를 권한다. 반창에서 나를 배웅해 주었던 태국 친구의 친구란다. 피곤한 버스여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커피를 손수 타서 얼굴도 모르는 내게 가져 온 것이다.

바쁜 마음에 허겁지겁 커피를 마시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버스에 올라타는 나를 차창 밖에서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는 이름 모를 친구의 친구…. 내가 마셔 본 중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값진 커피….
 

▲ 넝카이터미널의 아침. 버스를 타고 내린 사람들과 손님을 모시려는 뚝뚝이 기사들

다음날 아침 9시15분에 넝카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가는 국제버스가 오전 9시30분에 출발하기에 도착하자마자 숨돌릴 겨를도 없이 비엔티안 행 버스에 올랐다. 넝카이터미널에서 비엔티안시외버스터미널까지 출입국 수속 시간을 합해 1시간10분 정도가 소요됐다. 비자클릭이 목적이라 버스에 내리자 마자 넝카이행 국제버스 스케줄을 보니 12시40분 버스가 있다. 티켓을 구입하고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어 멀리 가진 못하고 터미널 앞 딸랏싸오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바로 터미널로 돌아왔다.

오늘 따라 유난히 비엔티안 시내에 동자승들이 많이 눈에 띈다. 카메라 렌즈를 300mm로 갈아 끼우고 동자승들을 뷰파인더에 담는다. 날씨가 흐리고 외각대 없이 멀리 있는 피사체를 촬영하려니 핀이 맞지 않는다.
 

▲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어린여자아이. 엄마일까?

내 앞을 지나는 여자아이가 시선을 붙잡는다. 열댓 살쯤 되어 보이는데 갓난아이를 안고 있고 일본인 여성여행자가 놀라 쳐다보고 있다. 여자아이의 몸을 보니 아이를 낳은 것 같지는 않은데 이들의 풍습을 알고 있는 나는 아이가 아이를 낳은 것 같아 보였다. 지난해 태국의 미성년자 미혼모에 대해 취재를 해 KBS지구촌 뉴스에 보낸 적이 있어 동남아 조혼 풍습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 메콩 강변에 한무리의 여행자들이 지나고 있다.

넝카이행 버스를 타고 태국 국경을 넘자마자 넝카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뚝뚝을 몰고 한걸음에 터미널로 달려 온 친구는 나를 반겼다. 친구의 전화벨이 계속 울린다. 무척 바쁜 모양이다. 타사뎃시장에 데려 달라는 나를 내려 주고 먼저 가게로 갈 테니 볼일보고 오라며 뚝뚝을 몰고 떠난다. 바쁜 와중에도 내 전화를 받고 와준 게 너무 고마웠다.

시장을 둘러보고 메콩으로 나갔다. 언제나 그렇듯 메콩강변 카페엔 서양인들이 맥주 한 잔에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한 무리의 서양인들이 지나간다. 메콩강변에서 강 건너 라오스를 한참 동안 맥 없이 바라보다 시장 골목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마중을 나오지만 16kg이나 빠진 나를 알아보지는 못하는 듯 했다. 테이블 몇 개 없는 작은 커피숍이지만 외국인 단골들이 많다. 뜨거운 모카커피를 시켜 단 숨에 마셨다. 지나는 여행자를 멍하니 바라보다 친구의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12자매 중 4자매가 함께 운영하는 태국전통마사지 가게는 손님들로 꽉 찼다. 나이가 동갑인 친구는 마사지 손님이 없을 땐 뚝뚝을 운전하고 언니와 동생들은 마사지를 한다. 동생이 태국정부의 정식 마사지 학교를 수료하고 자격증을 취득해 여행지에서는 받아 볼 수 없는 전통 마사지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마사지하는 자매들

넝카이 오면 언제나 그랬듯 손님이 빠져 나간 다음 동생에게 마사지를 부탁했다. 손님을 많이 받아 힘들 텐데도 혼신을 다해 근육 하나하나를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 주고 있는 것이 내 몸으로 전해 진다. 버스 안에서의 새우잠으로 피곤한 몸은 풀리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든다.

그녀들과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라오스를 여행하고 방콕으로 돌아가기 위해 넝카이로 넘어와 저녁에 출발하는 기차 스케줄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아 메콩강가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두 자매 또한 뚝뚝을 세워 놓고 메콩강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일이 있다며 동생이 가버리고 언니만 남아 우리 일행과 손짓 발짓으로 얘기 하다 늦은 열차시간을 알고 우리가 편히 쉴 곳을 안내해 준 곳이 그녀들의 마사지 가게였다. 텅 빈 가게였지만 우리에게 자리를 내 준 그녀들에게 신세를 지고 넝카이를 떠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고, 넝카이에 들을 때 마다 신세를 지고 떠나지만 그녀들은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었다.

서양인과 일본인들에겐 잘 알려진 넝카이는 관광지라기 보다는 조용한 휴식처로 장기체류자들이 비자클릭을 위해 국경을 넘거나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가는 여행자들이 거쳐가는 곳이다. 뜨내기 여행자들이 많은 탓에 작은 도시엔 유난히 뚝뚝(Tuk Tuk)이 많다. 기차역, 터미널, 거리 골목마다 빈 뚝뚝이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도 타(他) 도시에 비해 뚝뚝 요금이 비싸다. 짧은 거리의 기본 요금이 '70바트'정도이며 먼 거리는 부르는 게 값….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싼 뚝뚝 요금을 빼면 호텔, 게스트하우스, 음식값 등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 타사뎃 골목에 있는 후레시 커피숍. 주인아주머니가 상냥하기도 하지만 커피 맛이 일품이다.

10개월 만에 다시 찾은 넝카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포근하고 다정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태국의 여느 도시와 달리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었다. 버스터미널의 뚝뚝이 아저씨…. 타싸뎃 시장의 노점 아줌마…. 언제나 웃음으로 맞아주는 커피숍 주인 아줌마….

오후 7시 20분 라용으로 출발하는 버스시간이 떠남을 재촉한다. 오늘 저녁에 떠나야 한다는 말에 슬퍼하던 자매들과 손님이 밀려들어 한 마디의 얘기조차 하지 못하지만 눈빛으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마음으로 통한다.

열심히 사는 그녀들을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과 아쉬움이 꿈틀거린다. 마사지를 해 주고, 뚝뚝으로 안내해 주고도 친구라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려는…. 친구라며 넝카이의 이름난 곳을 시간 내어 안내를 해 주던…..

19일 오후 7시 10분 넝카이시외버스터미널….
버스 앞에 뚝뚝이를 세웠다. 언제 다시 볼 수 있냐는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내게 다음에 보면 꼭 식사 같이 하자는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만남에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었는데….

나는 지금 넝카이에서 라용으로 가는 오후 7시 20분 2층 버스를 타고 숙소인 반창으로 가며 글을 쓰고 있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다 보니 현지인들과의 만남이 많았다. 현지인들과의 만남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경우엔 좋은 인연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넝카이 자매들은 특별했다. 가난을 박차고 일어나 열심히 사는 그녀들에게 삶의 감동을 받았고, 세상살이가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의 무박 3일 넝카이여행을 끝내며, 아마도 다시 볼 수 없겠지만 자매들의 삶이 행복하길 바란다.

최웅선 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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