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암마을 입구

늦은 아침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였던 충남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에 가기 위해 지하철 1호선을 탔다. 얼룩무늬 벙거지를 눌러 쓰고 허리벨트에 카메라 렌즈를 주렁주렁 매달고 와이러스까지 목에 건 나에게 군중의 시선이 쏠린다.

출근시간이 지나서인지 지하철은 여유가 있다. 수원을 벗어나자 도시의 번잡한 모습을 뒤로 남긴 채 차창 밖으로 논밭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도시의 분주함을 벗어 던진 채 소박한 농촌의 모습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이번 여행은 "외국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가공되지 않은 ‘전통(傳統)’ 그대로 우리 조상의 삶의 방식을 대대로 이어가고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서울 근교를 빼곤 한국사람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하기란 쉽지 않은데 외국인이 대중 교통편을 이용해 여행하기란 간단치 않은 문제였지만 의외로 쉬운 곳에서 답을 찾았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넋이 살아 있는 온천의 고장 아산시의 온양온천역을 나오자 오른쪽으로 여행자를 위한 관광안내소가 광장 분수대에선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고 광장 옆 고가철로 밑에선 장이 섰다. 시골 장날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외암민속마을을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각자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도시버스정류장의 그것과는 다른 시골버스정류장엔 기쁨은 나눠주고 슬픔은 덜어주는 우리들의 삶이 고스란히 베어 있고 버스노선 정보는 깔끔하고 알아보기 쉽게 안내되었고 버스의 예정 도착정보까지 전광판을 통해 안내하고 있다.

버스 안엔 농기구를 고쳐 돌아가는 농부와 잔칫날에 먹을 떡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낙네 그리고 이방인이 자리를 차지했다. 35분쯤 달려 버스에서 내리자 바로 외암마을 입구다. 마을 앞으로는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싼다. 나무의 큰 줄기를 따라 작은 가지가 뻗어 열매가 맺은 듯 구릉지의 집들이 선조들의 자연과 어우러진 소박한 삶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자 물레방아와 마을 중심으로 통하는 큰 길과 좌•우 샛길이 손님을 맞는다. 큰 길로 조금 올라가자 반가의 고택과 길을 따라 이어진 나지막한 돌담이 늘어서고 돌담 위로 감나무 대추나무가 무르익어 가며 가을을 재촉하고 돌담 호박꽃이 방긋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천고마비의 풍경에 취해 좁은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니 넓은 마당과 수백 년은 됐음직한 은행나무가 서있는 고택이 높은 벼슬을 지낸 고관의 고택임을 한눈에 알게 한다. 이 건재(建齎)고택은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李相翼 1848~1897)이 살던 집으로 ‘영암군수댁’이라고도 불리며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리저리 돌담길 을 따라 문이 열린 고택 안으로 들어갔다. 규모로 보니 조선시대 반가(班家. 양반의 집안)인 듯 했다. 집안에 사람이 있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신경 쓰지 않는다. 백 년은 지났을 법한 소나무들이 집 안을 감싸고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실개천은 마을 상부에서 인위적으로 물길을 터 집들을 통과하며 생활용수로 쓰고 곡수(曲水)와 연못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 집안으로 흐르는 물길

물길을 만든 이유는 풍수(風水)를 중요시 여기는 선조들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행(五行)사상에서 화(火)와 물(水)은 서로 상극으로 마을의 주산인 설화산(雪火山)이 화산(火山)이라 하여 ‘화(火)’의 기운이 마을에 미칠 수 있다고 생각, 화와 상극하는 ‘물(水)’길을 터 ‘화’의 기를 제압해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위함이라고 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조상들에 삶의 머릿속에 담아보며 걷다 보니 작은 참판댁이다.

작은 참판댁에서는 빛깔 고운 붉은 고추를 말리고 있다. 모두 외출한 듯 집안에 사람이 없어 이곳 저곳을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참판댁’이란 택호는 이조참판 을 지낸 퇴호 이정렬(1865~1950)이 살던 집이라 하여 붙은 이름으로 돌담 사이로 큰댁과 작은댁이 있고 고종황제가 이정렬에게 하사해 지은 집이라고 한다.

400년 전 예안이씨가 마을에 들어와 번성하여 예안이씨 집성마을로 바뀐 ‘외암민속마을’은 ‘국가지정문화재’이며,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으로 우리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열녀 안동권씨 정려를 비롯 송화댁, 교수댁 병사댁 등 신분과 지위에 따라 택호가 붙여져 있다.

또한, 마을 입구 왼쪽 제1주차장 쪽으로 전통민속체험장, 전통혼례장, 민속관, 떡메치기체험장 등이 있다. 조선시대 반가(班家) 및 서민의 가옥구조와 생활양식 등을 볼 수 있는 체험장은 꼭 둘러봐야 할 포인트다.

외암민속마을에서는 주말을 이용 외암마을체험 등 다양한 상설체험장 운영과 행사 등이 있어 외암민속마을 체험사무실(문의 041-541-0848)이나 홈페이지(www.oeammaul.co.kr)를 참고하여 방문한다면 더욱 좋다.

최웅선 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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