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유력무죄(有力無罪) 무력유죄(無力有罪)’

[와이드스포츠 최웅선 기자]1988년 서울올림픽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인 10월, 세상을 뒤집는 사건이 터졌다.

영등포 교도소 미결수였던 지강헌 등 12명이 교도소 이감 중 집단 탈출한 것. 지강헌 등 탈주범들은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9일간 경찰과 대치하며 인질극을 벌였다. 지강헌은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을 외치며 권총 자살했다. 흉악범 지강헌이 유언으로 남긴 한 마디는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13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아래 내용은 당시 KLPGA 집행부에 제출된 ‘징계주문요구서‘와 와이드스포츠의 취재 내용이다.

KLPGA 챔피언스 투어에 출전한 선수가 경기 도중 경기위원을 폭행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았다. 당시 가해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KLPGA 이사 신분이었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던 그는 승승장구해 현재 김상렬 KLPGA 회장, 강춘자 수석부회장에 이어 ‘넘버3’인 부회장직에 올랐다. 현재도 챔피언스 투어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이영미 부회장이다.

당시 사건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이영미 부회장은 2013년 시니어투어 4차전이 열린 센추리21CC 레이크코스 11번홀에서 친 티샷이 좌측 해저드 라인에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 그대로 치던가 아니면 골프규칙 26-1에 의거 벌타를 부과 받고 ‘드롭’할 수 있다.

그러나 이영미는 경기위원을 호출했다. K위원이 현장에 도착했고 해저드 내 볼임을 확인 판정했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이영미는 경기위원을 향해 “해저드 선을 잘못 그었다”며 “말뚝을 똑바로 박아라”라고 윽박질렀다. ‘레이업’하는 과정에서도 경기위원에게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티샷을 하고 난 후 화를 억제하지 못한 이영미는 골프클럽(웨지) 헤드를 경기위원의 얼굴에 들이대고 또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흉기를 들고 협박을 한 것이다.

이영미 부회장은 “경기위원과 마찰을 빚은 건 사실이지만 선수로서 정당한 요구를 했을 뿐”이라며 “목소리는 컸지만 욕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당시 경기 중이라 클럽을 들고 있어 오해가 있었다”고 변명했다.

피해자인 K경기위원의 말은 달랐다. 그는 “상처 입은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일(폭행)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확인해 줬다.

충격적인 건 당시 폭행사건이 덮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4년 KLPGA 경기분과위원장으로 위촉된 정창기 울산골프협회 회장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증거를 수집해 상벌위원회 소집을 요구해 알려졌다.

정 위원장은 당시 경기가 열린 센추리21CC로 직접 가 캐디 마스터와 담당 캐디의 진술서를 받아 상벌위원회(당시 위원장 배명희) 소집을 건의했다. 하지만 상벌위원회는 쉽게 소집되지 않았다.

정 위원장의 강력한 항의가 거듭되자 사태를 파악한 강춘자 수석부회장은 상벌위원회 소집을 정식 요청했다.

대회장 캐디들의 진술서와 함께 피해자인 K위원이 참석해 폭행사실을 증언했고 당시 현장에 있던 또 한 명의 경기위원은 ‘챔피언스투어’ 출전으로 참석할 수 없어 대회장에서 전화로 증언했다. 증언은 스피커폰으로 연결해 상벌위원들이 모두 청취했다.

선수가 경기도중 폭행사실이 명백히 확인되었는데도 상벌위원회는 징계를 내려지지 않았다. 당시 상벌위원회는 전원 KLPGA 회원으로 구성되었고 이중 60~70%가 챔피언스투어를 뛰는 현역선수였다. 팔이 안으로 굽은 것.

KLPGA 고위 관계자는 “이영미 부회장의 당시 신분은 이사로 이사회 하부기관인 상벌분과위원회에서 이사의 징계를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이사회로 넘겼고 ‘경고’로 마무리 됐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강춘자 수석부회장이 제 식구를 감싸지 않고 이영미의 폭행사건에 대해 징계를 요청하고서 일부 회원들의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 이영미KLPGA 부회장

이영미의 ‘막가파식’ 횡포는 이뿐이 아니다. 2013년 다른 시니어투어 대회다. 대회장은 센추리21CC 필드코스다. 8번홀 두 번째 샷 지점에서 이영미의 티샷이 ‘아웃오브바운즈(OB)’가 났다. OB라인에서도 20cm정도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영미는 경기위원을 호출했다. H경기위원이 현장에 도착해 OB를 확인했다. OB가 확실했으므로 경기위원을 호출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영미는 H위원에게 OB선이 잘못 그어졌다며 팀장 호출을 요구했다. H위원은 ‘OB가 난 상황이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으므로 전체 팀 경기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팀장에게 확인할 필요 없이 플레이를 계속할 것을 권했다’

이영미는 막무가내로 팀장 호출을 요구했다고 한다. H위원은 이영미에게 ‘팀장을 불러서 OB판정이 맞는다면 부당 지연으로 페널티가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팀장이 현장에 도착해 OB판정을 내렸고 경고한대로 8번홀 플레이가 끝나고 ‘골프규칙 6조7항(부당지연)’에 의거 벌타를 부과했다.

경기위원의 정당한 집행에 이영미는 경기위원 카트를 향해 장갑과 볼을 집어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영미의 ‘안하무인’은 해를 넘어서도 계속됐다. 2014년 시니어투어 때다. 이영미는 ‘핀 위치가 어렵다. 왜 이따위로 하느냐. 왜 벙커 뒤에 핀을 꼽느냐’는 등 사사건건 경기위원에게 시비를 걸고 부당한 요구를 했다.

이영미 부회장은 “폭행사건은 증언을 한 경기위원과 진술서를 낸 캐디들이 죄 없는 나를 죽이려고 모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기 도중 경기위원들에게 한 말은 ‘갑’질이 아니라 선수로서 당연한 요구였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2013년 11월이다. 당시 ADT캡스 챔피언십 2라운드를 공동선두로 시작한 최혜정은 14번홀에서 세 번째 샷을 위해 ‘TIO(움직일 수 없는 임시 장애물)’를 제거했다. 이를 본 경기위원은 현장에서 벌타를 부과했다. ‘룰’을 잘 몰랐던 최혜정은 김송률 경기위원장을 호출했고 ‘벌타와 무벌타’ 사이에서 몇 번을 오락가락한 경기위원회는 최종적으로 ‘무벌타’로 처리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KLPGA 상벌위원회(위원장 배명희)는 최혜정을 소환해 ‘경기위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원심과 재심을 거쳐 벌금 1000만원과 3개 대회 출장정지를 결정했다.

기자는 당시 현장에서 김 경기위원장과 최혜정 옆에 있으면서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최혜정은 단지 경기위원장에게 정당한 요구를 했을 뿐이지만 ‘괘씸죄’에 걸려 철퇴를 맞은 것(와이드스포츠 14년 3월 12일자 최웅선 기자의 ‘이중 잣대로 선수 길들이기에 나선 KLPGA집행부’ 참조).

탈주범이자 흉악범인 지강헌은 한 많은 삶을 끝내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외쳐 한국사회의 현실을 꼬집었다. ‘골프맘’이자 선수로서 생계형 골퍼였던 최혜정은 자신의 권리인 정당한 요구를 했음에도 중징계를 받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이영미의 ‘폭행사건’은 은폐됐다.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KLPGA 이영미 부회장에게는 ‘유력무죄(有力無罪) 무력유죄(無力有罪)’인 셈이다.

폭행사건 취재도중 흘려 넘기기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경기위원은 “이영미 부회장의 경기위원에 대한 ‘갑’질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작년 9월 챔피언스 투어 경기도중 경기위원이 ‘OB 말뚝’을 뽑아 말썽이 됐는데 그 당시 이영미 부회장이 개입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폭로했다.

경기위원의 폭로를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당시 OB 말뚝을 뽑은 경기위원은 징계를 받지 않았고 진실을 밝혀야할 최진하 경기위원장은 거짓말로 사건을 은폐하려했다. 힘 있는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은 충분하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상벌위원회 장연택 상벌위원장은 “선수가 경기위원을 폭행할 경우 제명 밖에 없다”며 “경기위원의 심각한 실수가 있어 정상참작이 될 경우라도 최소 자격정지 5년의 중징계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어 “어떤 경우에도 스포츠에서 폭력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강춘자 수석부회장은 “이 부회장의 ‘건’은 이사회에서 내린 결정이라 회장님과 나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재심에 대해서도 “회장님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도 법위에 군림할 수 없다. 광화문의 촛불이 그것을 증명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속돼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하지만 이영미 KLPGA 부회장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승승장구해 ‘No3’가 되고 챔피언스 투어를 계속 뛰고 있다.

최웅선 기자  wschoi@focusin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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