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가볼만한 곳]양평 ‘구둔역’, 녹슨 철길에 내려앉은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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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혁 기자 | 승인 2016.12.06 07:45

▲ 구둔역 역사 전경<한국관광공사제공>

[와이드스포츠=강혁 기자]세월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은행나무 한 그루, 엔진이 식은 지 오래 된 기관차와 텅 빈 객차 한 량. 경기도 양평의 ‘구둔역’이다.

1940년 4월, 중앙선의 간이역으로 문을 연 구둔역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지켜봤고 한국전쟁이라는 질곡의 세월을 견뎌 온 산 증인이다.

청량리를 출발해 하루 몇 차례 오가던 기차가 중앙선 복선화로 노선이 변경되자 2012년 폐역의 수순을 밟았다. 구둔역은 역사의 흔적을 뒤로하고 폐역이라는 명패를 달고 겨울 벌판에 선 것이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명언처럼 구둔역은 폐역 했지만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 구둔역 고백의정원<한국관광공사 제공>

삐걱거리는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열차가 오가던 시절의 시간표와 매표소가 그대로다. 승강장으로 나가면 노목에는 소원지가 매달려 초겨울 바람을 견디고 있다. 지나는 기차가 없는 폐역으로 전락했지만 청량리행을 알리는 이정표와 녹슨 철로 변 한켠으로 멈춰선 기관차와 객차는 세월의 흔적에도 변함이 없다.

구둔역이 있는 구둔마을은 예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 한양으로 넘어서는 언덕길에 진지 아홉 개가 있어 ‘구둔(九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둔역은 한국전쟁 당시에도 허물어지지 않고 남았다고 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한 구둔역이 되살아 난 것은 영화 ‘건축학개론’이 흥행에 성공하면서다. 또 김국진과 강수지가 ‘불타는 청춘’에서 훈훈한 철길 데이트 코스로 선택한 곳도 구둔역이다.

철길은 녹슬어 가지만 구둔역은 올해 말부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마을 주민들이 역 단장을 마쳤고 역사 옆에는 빨간 벽돌과 나무 한 그루가 어우러진 ‘고백의 정원’을 조성해 연인들의 사랑을 고백할 장소로 만들었다.

또 사무실은 카페로 꾸몄고 고구마피자와 빵 만들기 체험장도 문을 연다. 승강장 평에는 군불을 쬐며 취위를 다스릴 모닥불 터도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