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속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있는 한화골프단 김상균 감독

[골프포스트(제주)=최웅선 기자]‘삐~ 삐~’ 핸드폰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강렬한 진동이 울린다. 기자뿐 아니라 운집해 있던 군중 속에서도 똑같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국민안전처에서 보내는 ‘긴급재난문자’였다. 제주에 ‘폭염특보’가 발령 난 것이다.

제주도의 오라컨트리클럽 동·서코스(파72.6519야드)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2회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 1, 2라운드는 35도가 넘는 폭염과 함께 높은 습도 때문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박인비(27 KB금융그룹)의 경기를 보려는 구름갤러리는 뙤약볕을 마다 않고 샷 하나하나에 탄성을 자아내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 군중 속에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모자조차 쓰지 않은 채 이글거리는 태양을 온 몸으로 받으며 선수들의 경기에 방해될까 발소리와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군중 속에 파 묻혀있었지만 큰 신장과 좋은 몸집 때문에 그가 한화골프단 김상균 감독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한화골프단 소속선수는 미국LPGA투어 8명과 KLPGA투어 8명을 합해 모두 16명이다. KLPGA 2부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 3명을 포함하면 19명이다. 이들 모두의 ‘컨트롤타워’가 김 감독이다.

그는 KLPGA투어의 매 경기를 쫓아다니면서 소속선수의 숙소와 먹는 것은 기본이고 코스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경기력까지 꼼꼼히 살핀다. 경기가 끝나면 ‘카카오톡’으로 해당 선수에게 몇 번 홀에서는 어떤 실수를 했는지 실수에 원인은 무엇인지 문자로 보내 다음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매번 실수는 반복된다. 그러면 김 감독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 기자와 담소를 나누면서 코스를 돌고 있는 김상균 감독

김 감독에게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는 특별했다. 윤채영은 지난해 이 대회에서 프로데뷔 9년 만에 우승했다. 기자는 당시 최종라운드를 김 감독과 함께 갤러리로 나섰다. 그는 첫 출산을 기다리는 아빠의 마음처럼 초초함과 기대감으로 안절부절 했다.

윤채영이 우승 퍼트를 할 때 그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린을 쳐다보지 못했다.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기자가 보기엔 수능시험을 치르는 부모의 마음처럼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초조함은 자신도 모르게 애꿎은 풀을 뜯고 있었다.

‘와’하는 함성이 터지자 김 감독은 ‘괴성’을 지르면서 그린으로 뛰쳐나갔다. 챔피언 윤채영과 기쁨의 포옹을 할 때 김 감독의 눈엔 땀이 아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승퍼트가 홀에 떨어지자 어린아이처럼 두 팔을 벌리고 그린 위에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벌써 1년이 지나 윤채영이 생애 첫 타이틀 방어에 나선 것. 그런데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이자 커리어 그랜드슬래머인 박인비(27 KB금융그룹)와 올 시즌 상종가를 치고 있는 고진영(20 넵스)과 1, 2라운드 동반라운드를 하게 되자 김 감독은 1년 만에 다시 윤채영의 라운드에 갤러리로 출동한 것. 이번엔 감독 자격이 아닌 응원 차원에서다.

김 감독은 윤채영의 타이틀 방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몸 상태가 나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김 감독은 “골프대회에서 디펜딩 챔피언이 타이틀을 방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윤채영 선수가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친 것이 자랑스러울 뿐”이라는 1, 2라운드 관전 소감을 밝혔다.

대회 첫날 1언더파를 기록했던 윤채영은 둘째 날 2타를 까먹고 1오버파 145타로 최종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타이틀 방어는 쉽지 않은 전망이다. 김 감독은 “우리 구단 소속선수들이 우승하면 좋겠지만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KLPGA투어는 한 주 휴식에 들어간다. 하지만 김 감독은 쉴 수가 없다. 성적이 나쁜 선수들을 한화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골든베이 컨트리클럽에서 연습을 할 때 뒷바라지를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focusin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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