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승 트로피 들고 활짝 웃는 전인지/LPGA투어 캡처

[골프포스트=최웅선 기자]기자는 늦은 아침 눈을 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최종라운드 결과를 확인했다. 전날 잠을 이루기 전까지만 해도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전인지(21 하이트진로)가 첫 출전한 US여자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전인지의 US여자오픈 출전은 처음이다. 그 동안 기회가 있었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전을 포기해야만 했다.

‘루키’ 해였던 2013년 전인지는 한국여자오픈에서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뒀다. 우승자 자격으로 이듬해 US여자오픈 출전권이 주어졌지만 포기해야 했다. 2014 한국여자오픈과 일정이 겹쳤기 때문이다. 초청장을 받아든 이상 미국행을 강행할 수 있었지만 스승인 박원골프아카데미 박원 원장의 만류 때문이다.

당시 박 원장은 “US여자오픈 출전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한국여자오픈 타이틀 방어는 평생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며 전인지를 설득했다. 전인지는 두 눈이 퉁퉁 붓도록 펑펑 울었다. 골프채를 잡는 순간부터 꿈꾸어 오던 US여자오픈 출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동계훈련부터 아니 2011년 말 국가대표를 반납하고 프로 턴을 선언하면서 전인지는 미국 올랜도의 사이프러스 골프장에서 박 원장과 함께 사실상 LPGA투어 적응훈련을 시작했다.

2부 투어 1년을 거쳐 2013년 정규투어에 입문해 첫 우승으로 내셔널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왼쪽 어깨 부상이 왔다. ‘슈퍼루키’ 김효주(20 롯데)와 시즌 막판까지 신인왕 경쟁을 펼친 전인지는 ADT캡스 챔피언십 경기 도중 부상 악화로 기권하면서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신인왕 타이틀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지난해 시즌 3승을 거두고 승승장구했지만 어깨 부상은 전인지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전인지의 어깨부상을 쉽게 완치될 일이 아니었다. 꾸준한 치료가 필요했다. 1년이 넘는 회복기간은 박 원장의 노력이 컸다. 2013년 말 미국 전지훈련을 떠나면서 박 원장은 전인지를 위해 물리치료사를 대동했다. 지난겨울 동계훈련도 똑같았다. 2년여에 걸친 박 원장의 지극 정성은 전인지의 부상회복으로 이어졌다.

올해 3년차인 전인지는 미국 전지훈련이 끝나고도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고 KLPGA투어 개막 전까지 미국에 남아 LPGA투어를 뛰었다. 미국진출을 위한 적응이었다. 미국 진출 계획은 전인지의 프로 데뷔 초부터 박 원장의 철저한 계획으로 이루어졌다. 아마추어 때부터 전인지의 잠재력을 알아 본 때문이다.

단 조건이 이었다. 퀄리파잉스쿨이 아닌 초청선수로 출전한 대회에서 상금을 획득해 상금랭킹으로 시드를 받거나 LPGA투어에서 우승해 직행 티켓을 확보하는 것이다. 박 원장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전인지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컨디션 조절이었다. 시즌 초부터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기 시작한 전인지는 매 대회 출전으로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급기야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 2라운드 경기가 끝나고 전인지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전인지는 대회 강행을 요구했으나 박 원장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전인지에게 박 원장은 “고집을 피우려면 인연을 끊자”고 단호하게 대했다.

작은 부상이 화를 부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미 초청장을 받아 놓은 J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살롱파스컵과 US여자오픈 그리고 더 나아가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긴 여정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짧은 휴식이었지만 전인지는 박 원장의 바람처럼 처음 출전한 일본투어에서 그것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트로피를 가져왔다. 전인지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US여자오픈 개막 전날 저녁 박 원장에게서 기자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일본 골프다이제스트에 실린 전인지의 기사 때문이다. 기자는 ‘미국 간 김에 US여자오픈 트로피를 가져오라‘고 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건넨 인사였지만 박 원장이 이번 US여자오픈을 대비해 지난겨울부터 전인지를 훈련 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은 제자의 능력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고 제자는 스승의 모진 말에도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또 눈앞에 보이는 이득보다 선수를 위해 장기적 안목으로 선수를 지도하고 이끈 노력의 결과가 첫 출전한 US여자오픈 우승이라는 결과물을 얻었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focusinasia.com

<저작권자 © 와이드스포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