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31, 필리핀)가 영국의 자존심 리키 해튼(30, 영국)을 KO로 침몰시키며 21세기 최고의 복서임을 재확인했다.

파퀴아오는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IBO/RING 주니어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리키 해튼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2라운드 2분 59초만에 KO승을 거뒀다.

지난해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4체급을 석권한 바 있는 파퀴아오는 이번 경기에서 웰터급까지 정복하면서 한 층 그 주가를 높였다.

무하마드 알리, 마이크 타이슨, 오스카 델 라 호야 등 중량급 선수들이 20세기를 마무리했다면 키 168cm의 경량급 아시안 복서가 21세기를 열고 있다.

4체급 휩쓴 아시아의 정복자

매니 파퀴아오는 필리핀의 남부 섬인 민다나오 섬 출신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복싱에 대한 열기가 높은 필리핀에서 파퀴아오는 돈을 벌기 위해 12세부터 복싱을 시작해 16세에 프로에 데뷔했다.

1998년 챗차이 사사쿨을 KO로 꺾고 WBC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파퀴아오는 2001년에는 세 체급 위인 IBF 슈퍼밴텀급 세계챔피언에 오른다. 단 숨에 두 체급을 석권한 파퀴아오는 2008년 슈퍼페더급과, 라이트급을 휩쓸며 네 체급 정복을 달성하게 된다.

그 뿐 아니다. 최근 오스카 델라 호야와의 경기에서는 웰터급으로 싸웠고, 3일 리키 해튼과의 경기는 주니어 웰터급에서 경기했다. 사실상 그는 총 7개 체급에서 14kg의 체중을 오르내리며 싸워왔다.

전쟁도 멈추게 하는 필리핀의 영웅

파퀴아오는 필리핀의 국민적인 영웅이다. 지난해 데니빗 디아즈와의 경기의 시청률은 60%가 넘었다. 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그를 응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국에서는 음반도 발매했으며 2007년에는 정계에도 도전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의 활약은 전쟁까지 멈추게 했다. 그가 태어난 민다나오 섬은 5% 이상의 이슬람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가톨릭이 주를 이루는 정부로부터 강력한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암살과 테러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쟁도 파퀴아오의 힘 앞에는 무기력했다.

필리핀은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의 지시로 파퀴아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무분규의 날'을 선언한다. 이슬람 반군 토벌에 바쁜 군도 이슬람 해방군과의 전투를 중단한다. 이슬람해방전선(MILF) 역시 지난해 6월 디아즈와 파퀴아오와의 경기 때 "오늘은 이슬람도, 가톨릭도 없다. 우리는 승리를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라며 파퀴아오에 열광했다.

스피드, 체력, 파괴력 모두 10점 만점에 10점

과거 세계 복싱은 중량급 선수들이 인기를 독차지했다. 70년대 무하마드 알리가 있었다면 80년대에는 마이크 타이슨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대전료는 대부분 헤비급 선수들이 싹쓸이했으며 대중적인 인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파퀴아오의 등장으로 이는 단숨에 바뀌었다. 파퀴아오는 발군의 스피드와 체력, 왼손잡이의 이점을 이용해 경량급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수많은 KO승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정확하고 빠른 좌우 연타과 필살의 왼손 스트레이트 공격으로 '왼손잡이는 지루하다'라는 고정관념을 단 한 방에 없애버린 장본인이다.

또한 상위 체급을 넘나들며 오스카 델 라 호야, 리키 해튼을 각각 TKO, KO로 꺾으며 상식을 흔들어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난한 농가 출신의 아시아인의 빠르고 다이내믹한 경기에 전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메이웨더와의 경기 성사될까?

인근 체급 대부분의 강자를 모조리 때려눕힌 파퀴아오의 다음 상대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메이웨더는 5체급을 석권한 미국 출신의 복서로 은퇴전 파운드 포 파운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선수다.

1998년 WBC 슈퍼페더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메이웨더는 이후 라이트급, 슈퍼라이트급, 웰터급, 슈퍼웰터급까지 재패하며 사상 4번째로 5체급을 석권했다. 게다가 WBC 단일 단체에서 5체급을 휩쓴 것은 메이웨더가 최초다.

2007년 리키 해튼을 10회 TKO로 꺾은 메이웨더는 "정상에 있을 대 그만두고 싶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에는 WWE의 링에 오르는 등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다. 파퀴아오와의 세계 최고 대결은 무산되는 듯 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이 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다. 메이웨더는 지난 2일(현지시각) 전격 복귀를 선언한 것. 메이웨더는 오는 7월 18일 후안 마누엘 마르케즈와 경기를 갖는다. 이 경기 결과에 따라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대결이 추진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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