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LPGA투어 서보미(31)

[최웅선 기자]"골프와 사랑 모두 '롱런'하고 싶어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서보미(31)의 소박한 '꿈'이다.

그녀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스물 넷에 만나 6년이란 시간 동안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지만 말없이 떠났다. 혼자 있을 땐 주체하지 못할 만큼 눈물이 흘렀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그렇게 첫 사랑에 아픔은 가슴속에 묻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그녀. 기자는 지난해 12월 이맘때 그녀를 인터뷰 한적이 있었다. 그녀가 왜 슬픈 눈을 가져야 했는지 그 이유를 꼬박 1년 만에 안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는 두 눈은 첫 사랑에 생채기 때문인지 눈물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얘기도 못하고 마음만 아팠죠. 아마 내게 골프가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누구나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사랑이지만 '첫 사랑은 이런 것일까'란 의문이 지금도 들어요." 가슴앓이를 한 그녀는 더욱 골프를 사랑하게 되었다.

지난해 KLPGA투어 한국여자오픈에서 아쉬운 준우승을 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던 서보미는 올 시즌 부상으로 프로데뷔 이후 최악의 해를 보냈다. "발목이 겹질렸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통증도 없고 괜찮았어요. 그런데 경사진 곳에서 스윙을 하면 아픈 거예요. 평지에선 괜찮고…. 많이 아팠다면 병원에 갔을 텐데…. 처음 당한 부상이라 제때 대처를 못해 병을 키웠죠."라며, 수줍어 한다.

샷감을 잃은 그녀는 매 대회 오버파를 치며 컷 탈락했다. 마음이 급할수록 보기를 쏟아내며 상황은 악화됐고 남은 두 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는 한 시드전을 가야 했다. "첫날 1언더파 15위로 출발했고, 둘째 날 2타를 더 줄여 3언더파 12위로 순위를 끌어 올렸어요. 안정권이지만 시드전이라는 게 한 타 한 타에 승부가 갈리잖아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잘 할 수 있을까?'란 압박감 때문에…."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첫 사랑의 가슴앓이와 시드전이란 지옥을 경험한 그녀는 성숙한 자태를 뽐내는 '품격 있는 여자'로 돌아왔다.

▲ 필라테스로 유연성을 키우는 서보미

그녀는 지방에서 대회가 있을 때도 토요일 오후면 근처 성당을 찾아 욕심부리지 않는 자신의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타인을 위해 기도를 하는 신앙심 깊은 '가톨릭 신자'다. 하지만 이제 '메이저 우승'에 욕심을 부리고 싶다고 말한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생긴다면 결혼할건데 5년간 시드가 확보되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고, 또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줄리 잉스터'처럼 철저한 자기관리로 '롱런'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거든요."

그녀는 내년 시즌 KLPGA투어 '맏언니'가 된다. 만 서른 둘에 최고령(?) 선수가 되는 한국여자프로골프 현실이 슬프지만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후배들을 보면 '선수로서 자기관리가 철저하지 못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는 "죽어라 연습한다고 실력이 쑥쑥 성장하는 건 아니거든요. 적당한 휴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하는데 요즘 후배들은 밥 먹고 골프만 쳐요. 그런 심리적 압박감이 오히려 일찍 도태시키는 것 같아요."라며, 골프 외의 취미생활을 가지라고 권한다.

또한, 엄격한 체력관리도 주문했다. "나이가 들어 몸 관리 하는 것보다 어렸을 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과 유연성 운동을 꾸준히 하면 체력적 부담이 없어요. 저는 골프를 시작하면서 헬스, 요가 등으로 관리를 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후배들보다 비거리가 많이 나가는 편이예요."라고 한다.

그는 KLPGA투어 후배들에게 '가슴 큰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언제 어디서나 후배들의 고민을 귀담아 들어 주는 그에 대해 '미녀골퍼' 윤채영(25.한화)은 "개인적인 사생활은 물론 투어에서의 어려움을 언니에게 얘기해요. 딱 꼬집어 뭐라 얘기 할 수 없지만 속상할 때 언니 품에 안기면 마음이 편안해져요."라고 한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열일곱 살 소녀가 아빠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잡고 14년이 흐르는 동안 골프는 그녀의 삶 속에 녹아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골프선수이기 전에 '사랑 받는 여자이고 싶다'고 한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golfpost.co.kr

<저작권자 © 와이드스포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