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LPGA투어 정미희

[최웅선 기자]"기자님! 어떡하면 골프를 잘 칠까요?"
지난 6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히든밸리 여자오픈 1라운드를 마친 정미희가 클럽하우스에서 기자와 마주치자 대뜸 물었다.

"기자님! 어떡하면 골프를 잘 칠까요?"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동병상련의 아픔일까? 한 때 프로지망생이었던 기자 역시 '어떡하면 골프를 잘 칠 수 있을까?'란 고민 때문에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한 적이 여러 번이었던 터라 형식적으로 대답은 했지만 그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음에 마음이 무거웠다.

정미희와의 첫 만남은 지난 해 메이저 대회인 KB금융 STAR챔피언십 1라운드가 끝나고 조윤희와 공동선두로 나서 기자회견을 위해 프레스룸에 들렀을 때다. 당시 정미희는 투어 5년차였지만 '무명'이었고, 선두로 라운드를 마친 것은 처음이다.

2007년 정규투어에 데뷔해 무난한 ‘루키’시즌을 보낸 그는 경험이 쌓이고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횟수가 잦아져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하지만 3년차에 욕심이 앞선 것일까? 비거리를 늘리기 위한 무리한 스윙으로 일관하다 그만 시드를 잃고 말았다. 그리고 악순환이 거듭되며 2부 투어 시드전도 떨어지고 3부 투어로 추락했다.

무리한 스윙은 그를 망가뜨렸다. 죽어라 연습하고 볼을 때려도 회복은 커녕 점점 더 문제가 심각해졌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는 골프채를 처음 잡은 때로 돌아가기로 했다. 프로란 생각을 지우고 똑딱볼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리모델링'에 들어간 그의 스윙에 변화가 오고 자신감이 생겼다. 2012 KLPGA 정규투어 시드전 본선 첫날 4언더파 68타로 출발해 여유 있게 시드전을 통과했다.

▲ 몸 만들기를 하는 정미희

하지만 2012년 개막전인 롯데마트 여자오픈 1,2라운드에서 78, 76타를 치고, 두 번째 대회인 리바트 레이디스 오픈에서는 79, 75타를 쳐 컷 오프 됐다. '쓴 맛 단 맛' 다 본 그는 흔들리지 않고 다음 대회를 준비했다. 세 번째 대회인 우리투자증권에서 시즌 첫 상금을 획득했다. 그러나 6월까지 열린 상반기 5개 대회에서 두 번 컷을 통과했을 뿐이다.

자신의 아픔 때문일까? 그는 지난 6월 열린 아시안투어 볼빅힐데스하임오픈 첫날 임성아, 이명환 등과 함께 김대현(24.하이트진로)을 응원하기 위해 대회장을 찾았다. 그녀의 '용광로' 같은 응원에 '필' 받은 김대현은 첫날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3위에 올랐다. 그리고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8주간의 긴 여름방학을 끝내고 하반기 대회에 출전했지만 첫 번째, 두 번째 대회에서 컷 오프 되고 이후 4개 대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상금은 쥐꼬리만했다. 남은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않는 한 '피 말리는 시드전'으로 가야 했다.

지난 달 끝난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공동 23위로 시즌 최고 성적을 올린 그는 경기가 끝나고 기자에게 "제 스윙을 믿기에 시드전은 걱정 하지 않아요."라고 말문을 연 뒤 "왜 자꾸 마음이 급해지는지…."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기자님 저 시드전 통과했어요." 정미희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다 죽어가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갑작스런 '한파'와 스트레스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에서 그는 언더파 스코어를 만들어내 14위로 시드전을 당당히 통과했다.

전국에 폭설이 내린 지난 5일 내년 시즌을 준비하며 몸 만들기에 한창인 그를 분당의 스포츠센터에서 만났다. 영하의 날씨에도 이마에 맺힌 굵은 땀방울이 그의 각오를 대신했다.

▲ 2012 한국여자오픈에서 연습라운드를 하는 정미희와 아버지 정종문씨

"저 이제 홀로서기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내년부터는 스스로 책임지는 생활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의 눈가엔 슬픔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그를 이끌어준 건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세미프로인 아버지 정종문씨(53)는 진주에서 연습장을 운영했다. 그가 태어나고 걷기 전부터 그는 아버지 골프연습장에서 놀았다. 하지만 골프를 하지는 않았다.

처음 골프채를 잡은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선수로 나서기엔 남보다 한참 늦은 나이지만 그는 천부적인 자질을 발휘하며 3년 만에 KLPGA투어에 데뷔했다.

그는 "투어프로가 되고 경험이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해가 거듭될수록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죠."라며, "2010년 2부 투어 시드까지 떨어지고 3부 투어 첫 대회 연장까지 가서 졌지만 우승보다 값진 용기와 희망 그리고 자신감을 얻어 재기했듯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며, "시드전 가는 일은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힘을 주었다.

'지옥의 레이스'에서 살아 돌아온 그는 곧 바로 자신의 가장 취약한 맨탈을 보강하기 위해 '코치'를 영입하는 등 발 빠른 행보로 내년 시즌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정미희프로가 2013년엔 우승이란 열매를 따길 희망해 본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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