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에 등불'이라는 말이 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위기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지난 3일 KPGA 주인인 회원들과 집안살림 잘 하라고 곳간 열쇠를 쥐어준 현 집행부가 정면 대립했다. 하루 이틀도 아닌 KPGA의 내부문제는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졌다. 그런데 현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생존권 싸움'으로 진화했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말 박삼구 회장이 7년 4개월의 임기를 마무리하고 퇴임하면서다. 당시 수석 부회장인 최상호(57), 고문 한장상(72) 그리고 '무명' 이명하(55)가 자천타천으로 차기 회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장상 후보가 영입인사로 내세웠던 풍산그룹 류진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KPGA회장으로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 이라고 못박았지만 한장상 고문은 후보직을 사퇴하고 이명하 후보와 합세해 '류진 회장님을 끝까지 모셔 오겠다.'며 제14대 회장에 이명하가 당선됐다.

▲ 지난해 11월 23일 열린 제14대 회장선거

류진 회장 영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미 '물 건너 간' 후였다. 이명하 회장의 안상수 전 시장 카드와 김학서 부회장, 임진한 이사가 내세운 전윤철 전 감사원장을 놓고 이때부터 '한 지붕 두 가족'의 갈등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이사회장에 티칭지회 회원들이 난입해 이사회를 무산시키고 이명하 회장은 어린 후배들에게 멱살까지 잡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정치판 뺨치는 행태를 보였다. 결국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서 승리한 자들은 전리품으로 3월 29일 정기대의원총회에서 86%의 절대적인 지지로 전윤철 전 감사원장을 제15대 KPGA회장으로 추대하고 4월 6일 취임식과 함께 현 집행부가 탄생했다.

더 큰 불행의 시작이었다. 적법절차(KPGA회장은 회원만이 될 수 있다.)를 적당히 무시한 채 취임한 전 회장은 50일 만에 법원에 의해 회장직무정지를 당한다. 현 집행부가 추대에서 취임까지 8일간의 시간을 활용해 정관을 개정하고 취임식을 가졌다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지만 현 집행부의 적당한 '무시'로 파국을 만들었다.

회장 직무대행에 오른 김학서 부회장체제의 전무이사는 협회 정상화 보다는 위임장 위조라는 범죄 혐의로 동부지검에 고소당하고 김학서 직무대행자는 민법 제60조의2(직무대행자의권한)에서 정한 법체계까지 무시하며 미분양 한복판에 자리한 경제성 없는 건물을 공청회 한 번 없이 용역회사 직원들을 동원해 '병풍'까지 쳐 가며 정족수까지 채우지 못한 이사회를 날치기로 통과 시키고 뻔뻔하게 KPGA의 45년 숙원 사업을 해결했다며 언론사에 보도자료까지 배포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유무죄를 논할 수 없지만 현 집행부에 몸 담고 있는 자들 중 명백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법의 단죄를 받을 것이다. 또한, 분노한 회원들에 의해 현 집행부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난장판이 언젠가 끝나고 또 다른 집행부가 들어서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지금은 한 뜻으로 뭉쳤지만 그때도 한 뜻일지….

협회는 개인의 것이 아닌 6천여 KPGA 회원과 골프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소유다. '막장 드라마'의 끝이 보이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골프는 법관(심판)이 없어 법(룰)에 위배될 때 자진 신고하여 벌타를 받는 유일한 스포츠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보았는데 자신은 들키지 않았겠지 하고 경기가 끝난 뒤 실격 당하지 말고 잘못된 자 잘못을 시인하고 벌타를 먹고 한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 추락한 위상을 다시 세우고 투어를 살리는 길이 모두가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최웅선 골프전문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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