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파타야 인근의 한국인이 자주 찾는 골프장

세계 4위의 거대한 골프시장 대한민국은 극동아시아에 위치한 까닭에 1년 중 4~5개월은 장마와 한파 때문에 골프를 즐길 수 없다. 그럼에도 최경주, 양용은, 박세리, 신지애 등 세계적인 골프선수를 배출한 골프강국이지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선 대중화 되지 못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1년 내 여름인 동남아시아엔 한국에선 온 프로골퍼와 프로지망생들 그리고 아마추어 골퍼들까지 합세해 현지 골프장을 점령한다.

특히, 한국골퍼들이 선호하는 태국 골프장의 경우 전지훈련생들로 인해 현지인들이 주말 부킹이 되지 않아 불평 아닌 불평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프로골퍼를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들은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프로골퍼와 프로지망생들의 스윙을 지켜보며 한국 최고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기자 또한 골프라면 환장을 한다. 골프를 열심히 할 때는 7천야드가 넘는 프로티에서도 언더파를 치며, PGA를 꿈꾸기도 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포기한지 4년이 흘렀고, 지난 4년 동안 클럽을 한번도 잡지 않은 탓에 근육질에 초콜릿 여섯 조각의 복근까지 갖춘 몸짱이었던 기자는 18kg의 지방이 온 몸을 감싸고 29인치의 허리가 36인치까지 늘었지만, 지난 여름 한국에서 100일간의 취재기간 동안 하루 한끼 먹고 무거운 장비 메고 20~30km를 걷는 강행군 탓에 14kg을 감량해 현재 73kg, 31인치의 허리를 갖게 됐고, 태국으로 돌아와 현지 취재를 하고 있다.

시간이 많아진 탓에 친하게 지내는 한국교민과 몇 번 드라이빙 레인지에 연습볼 치러 갔다가 다른 교민들과 함께 라운딩을 하게 됐다. Par4 456야드의 핸디캡 1의 1번 홀. 훅이나 세컨샷을 안전한 곳으로 빼 100야드 남은 세 번째 샷을 핀에 잘 붙였지만 주위가 산만해 아쉬운 보기를 했다. 찜찜한 마음에 2번 홀 티박스에 서 빈 스윙을 하고 티샷을 하기 위해 어드레스를 하고 목표지점을 보는 순간 동반라운딩을 하는 분이 자신의 티박스에 올라가 티샷을 한다. 한 마디로 뻑이 갔다.

티샷을 잡아 당겼지만 페어웨이가 넓은 탓에 세컨샷 지점이 좋았다. 동반자들이 몸이 안 풀렸는지 한 분이 뱀샷(토핑으로 볼이 뜨지 않고 굴러가는 샷)을 해 내 볼 오른쪽 20야드 지점에서 멈춘다. 동반자들의 샷이 끝나고 내 차례. 볼 3m 뒤에서 목표지점을 보고 빈 스윙 두 번하고, 어드레스에 들어가 목표지점을 다시 한번 보고 샷을 하는 내 프리샷 루틴은 일정하다. 세컨샷을 하기 위해 어드레스를 하고 목표지점을 보는 순간 앞에서 또 다시 샷을 한다.

정말 화가 났다. 화난 정도가 아니라 라운딩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몇 번 얼굴을 보고, 다른 동반자들 때문에 화를 삭이고 라운딩을 계속했다. 덕분에 계속되는 보기 플레이…. Par4 홀인 5번 홀에서 첫 버디를 잡았다. 6번 홀은 355야드, 슬라이스 홀이지만 내리막이고 페어웨이가 널널해 버디 하기 좋은 홀이다. 티샷이 잘 맞아 최적의 세컨샷 지점에 볼이 떨어졌다. 남은 거리는 80야드, 내심 줄 버디를 욕심 내며 다운스윙을 하는 순간 우렁찬 목소리에 놀라 뒷땅(duff)를 쳤다.

다행히 파를 하고 이어진 홀에서 버디 1개와 보기 1개, 파 1개를 하며 전반을 3개 오버로 마무리 했지만 10번 홀부터 14번 홀까지 줄 보기로 8개 오버인 80타를 쳤다. 오랜만의 라운딩이라 8오버파에 만족할 수 있지만 스코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라운딩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실수를 해 동반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린에서 동반자의 퍼팅라인을 밟고 지나가는 건 예쁘게 봐 줄 수 있지만 퍼팅을 하려고 어드레스에 들어갔는데 반대편이나 옆에서 홀을 향해 퍼팅을 하거나 자신의 볼 보다 뒤에 있는 동반자가 샷을 하기 위한 셋업을 마쳤는데 앞에서 갑자기 툭 튀어 나와 먼저 스윙을 하는 건 잘못된 행동으로 안전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볼에 맞아 사망할 수도 있다. 그것도 한 두 번은 귀엽게 봐 줄 수 있지만 18홀 내내 반복하는 건 골프를 칠 자격이 없다.

옛 실력 때문인지 현지교민들과 만나면 기자에게 골프에 대해 항상 많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하면 볼을 잘 칠 수 있는지…. 기자의 대답은 매번 똑같다. 연습장 자주 가고, 프로에게 레슨 받으라고…. 한 마디 덧붙여 골프스윙은 몇 번의 레슨과 연습으로 향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라운딩 중 골프를 못 치는 건 문제되지 않지만, 룰과 매너를 지키지 않는 건 동반자의 게임을 망칠 수 있기에 룰과 매너를 숙지하고 라운딩을 하라고 조언을 한다.

한국이건 외국이건 대부분의 골프장은 그린 주변이 다음 홀 티박스로 플레이어의 주의가 필요하다. 내가 그린에서 퍼팅을 하고 있는 동안 주변 티박스에선 티샷을 하고 있고, 내가 티샷을 하고 있는 동안 주변 그린에선 다른 플레이어가 퍼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팀 플레이를 중요시 하는 축구나 야구, 농구와는 달리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게임에 어느 정도 몰입하고 집중하느냐에 따라 스코어가 달라진다. 플레이어가 집중하기 위해선 동반자의 배려가 필수적이다. 골프 룰은 접어두더라도 동반플레이에서 매너만이라도 지킨다면 스코어에 상관없이 재밌는 하루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기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번 한 번의 경험만이 아닌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해외에서 라운딩을 즐기는 많은 골퍼와 캐디 그리고 기자의 숫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G20 등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매스컴에 연일 보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위상은 정부와 기업만이 높이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 나가 골프를 즐기는 개개인의 사소한 행동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수도 깎아 내릴 수도 있다.

최웅선 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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