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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떠도는 영혼들"
최웅선 기자 | 승인 2010.01.17 08:28
   
▲ 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에 필요한 자원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한 일본은 자원 확보를 위해 프랑스 식민지 인도차이나를 침공하여 점령한다. 1941년 도조 히데키를 수상으로 한 군부내각은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한다. 미국이 참전한 전쟁은 연합군 쪽으로 전세가 기운다.

1942년 9월 16일. 일본군이 연합군에게 빼앗긴 해상보급로를 대체하기 위해 방콕 ↔ 양곤 철도 건설에 연합군 전쟁포로 6만 여명 이상과 20만 여명의 민간인이 투입된다. 공사에 투입된 인원 중 1만 6천 여명의 연합군포로와 10만 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 죽음의 철도 공사중 제일 어려웠던 구간인 "헬파이어 패스"
일본인 엔지니어들은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인해 5년 정도의 공사기간이 소요된다고 했지만, 1942년 9월 16일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철로는 죽음의 대가로 16개월 만에 완공되며, "죽음의 철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자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도쿄전범재판에 넘겨졌다. 전쟁에 제일 큰 책임을 져야 할 군 통수권자인 천왕은 배제된 채, A급 전범으로 28명만이 재판을 받고 7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전쟁을 일으킨 A급 전쟁범죄자들은 소수를 제외하고 살아 남았다. 연합군이 기소한 B•C급 전쟁범죄자 중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148명이 있었다. 그 중 태국 칸차나부리 포로수용소의 포로감시원이었던 129명의 조선인. 그들의 신분은 군인이 아닌 일본의 침략전쟁에 군속으로 동원되어 일본군 명령에 따라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노역을 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최고지휘부로서 책임을 져야 했던 A급 전쟁범죄자인 해군상 '시마다 시게타로'는 종신금고형 판결을 받고 복역 중 1955년 석방되었지만, 일본제국주의의 군홧발에 짓밟힌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 징용되어 어떤 재량권도 갖지 못한 채 일본군의 명령에 따라 포로감시 역할을 했던 조선인 23명은 전쟁범죄자 재판에서 연합군 포로 희생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 안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참천 용사의 영혼을 기리는 작은 십자가

경성제국대학 재학 중 일본군 군속으로 징병돼 칸차나부리 포로수용소에서 통역병 역할을 수행하다 1947년 2월 25일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된 조문상(일본명 히라하라 모리쓰네)씨의 마지막 유서에는 "유령으로라도 세상을 떠돌 것이다. 그도 불가능하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라도 떠돌 것이다" 라고….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 강제 징용되어 지옥의 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전쟁범죄자와 대일 협력자로 고통 받고, 외면 받았다. 그들은 해방 후에도 귀국선을 탈 수 없었고 ,식민지 신민이었던 그들은 일본 사회에서도 배제된 채 경제적 궁핍 속에 세상을 떠났다.

   
▲ 지도 제공 : 태국 관광청 서울사무소

최웅선 기자  wschoi@golf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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