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LPGA투어 경기 장면

[와이드스포츠 최웅선 기자]‘세계 No1’.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회장 김상렬)의 지향점이다.

작년 11월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회연설에서 박성현(25)을 거명하며 한국여자골프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그들의 목표는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KLPGA의 성공신화는 막강한 권력을 쥔 ‘막가파’ 이사회가 좀먹고 있다. 물론 전체 이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KLPGA는 지난달 19일 정기 이사회에서 10월 KB금융 스타챔피언십 1라운드 취소사태로 국제적 망신살을 자초한 최진하 경기위원장을 재선임 했다. 더욱이 와이드스포츠 취재로 밝혀진 ‘부정행위’ 은폐 의혹도 있는 인물인데 말이다.

경기위원장 재선임 결정은 KLPGA호의 선장인 김상렬 회장은 ‘허수아비’, 협회 살림을 책임진 강춘자 수석부회장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사회 눈치를 보고 쩔쩔매야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적폐 사례다.

이사회가 ‘경기위원장 재선임’이란 무리수를 둔 퍼즐 조각을 맞춰보자. KLPGA 이사회는 2015년 말을 끝으로 임기가 끝나는 정창기 경기위원장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슬로 플레이’와 오심으로 얼룩졌던 KLPGA투어는 정 위원장 재임시절 근절됐다.

대한골프협회(KGA) 감사이자 울산골프협회장을 맡고 있던 정창기 씨가 거듭 거부하던 경기위원장직을 수락한 건 강춘자 수석부회장과 이영미 부회장의 삼고초려가 있어서다.

시작은 꽃길이었다. 당시 강 수석부회장은 “오심과 슬로 플레이로 기자들한테 하루가 멀다 하고 두들겨 맞았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스폰서에 집중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 위원장에게는 절대 권력을 쥔 이사회가 용서할 수 없는 큰 결점이 있었다. 집행부가 쉬쉬하며 감춰온 2013년 챔피언스 투어에서 이영미 부회장(당시 이사)의 경기위원 폭행사건을 파헤쳐 강력한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 위원장을 안고 갈 수는 없는 법.

이사회는 자신들의 판을 깨는 정 위원장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흠집을 내 한 평생 골프계에서 쌓아온 명예를 실추시키고 쫓아냈다.

지난 12월 국정 농단 사태의 주범 중 한 명으로 지목돼 구속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그의 비리를 파헤치다 역풍을 맞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사례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후 KLPGA 이사회는 ‘경기팀장제’로 시스템을 바꾸고 투어를 운영했지만 허구한 날 판정시비와 미숙한 경기운영 때문에 경기위원장 모집 공고를 다시 냈다.

당시 강 수석부회장은 정창기 전 경기위원장을 다시 앉히려 했지만 이사회의 강력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 때 이사회에서 추천한 인물이 최진하 현 경기위원장이다.

KLPGA 관계자는 “최 경기위원장 위촉을 가장 반대했던 사람이 이영미 부회장이었다”고 귀띔했다. 정창기 위원장 시절 ‘뜨거운 맛’을 본 이 부회장으로서는 외부인사가 경기위원장 자리를 꿰찬다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각본 없는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 재선임된 최진하 경기위원장

최 위원장은 정 전 위원장과 달랐다. 2016년 9월 챔피언스 투어 경기도중 경기위원이 ‘OB 말뚝’을 뽑아 문제가 됐다. 당시 선수로 출전한 이영미 부회장이 현장에서 경기위원과 ‘OB말뚝’ 사건을 상의했다는 후문이다.

‘OB 말뚝’ 사건이 알려지자 최 위원장은 진실을 감추고 거짓말로 은폐하려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 위원장이 ‘OB 말뚝’사건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실세’를 보호한 것. 최 위원장을 가장 강력히 반대했던 이 부회장에게는 자신의 품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셈이다.

지난달 KLPGA 정기이사회는 신임 경기위원장 선임에 관한 안건이 있었다. 김상렬 회장은 이 부회장에게 경기위원장 선임에 전권을 위임했다. 4명의 인사가 이력서를 제출했고 강춘자 수석부회장, 이 부회장, 김경자 전무, 김남진 국장이 면접을 봤다.

하지만 이날 면접에서 차기 경기위원장으로 추천할 인물이 없다며 이사회 의결로 넘겼다. 이사회는 4명의 인사를 ‘자격 미달’로 모두 불합격 처리하고 이 부회장은 이미 실패를 거듭했던 ‘경기팀장제’ 안을 다시 내놨다.

이 때 이사 한 명이 ‘경기팀장제’를 반대하며 ‘최진하 경기위원장을 재선임 하자’고 발언했다. 안건은 그대로 상정돼 16명의 참석자 중 12명이 재선임에 찬성했고 경기팀장제 2명, 기권 2명으로 최진하 위원장과 재계약을 합법적으로 연장했다.

경기위원장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은 이 부회장은 번번이 실패해 다수의 반대에 부딪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기팀장제 안건을 미리 서류로 정리해 가져왔을까? 또 선수출신으로 구성된 이사 중 한 명이 KB금융 챔피언십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면서도 왜 ‘최진하 카드’를 꺼냈을까? ‘짜고 친 고스톱’이란 냄새가 난다.

KB금융 사태 당시 최 경기위원장 경질을 가장 먼저 언급한 건 강춘자 수석부회장이다. 재선임 역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KLPGA는 경기위원장 선임 규정을 고쳐 가면서까지 최진하 경기위원장을 위촉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그래서 김상렬 회장은 강 수석부회장 대신 이 부회장에게 전권을 위임했다고 한다.

이사회의 결의사항은 회장과 수석부회장도 뒤집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선수출신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이 KLPGA 내부를 잘 아는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또 2020년 차기 수석부회장 자리를 놓고 강 수석부회장을 몰아내기 위한 세력의 ‘작전’이라는 설도 떠돈다. 최진하 경기위원장을 재선임 함으로써 언론의 집중포화가 또 다시 강 수석부회장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전략이란 뜻이다.

정창기 전 경기위원장은 2년간의 재임시절 선수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또 골프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불공정 시비에 휘말린 적도 없다.

2014년 KLPGA투어 시즌최종전 최종라운드 우승자 시상식이 끝나고 정상급선수 20여명이 그린에 있던 정 전 위원장에게로 달려 나갔다. 정 위원장을 둘러 싼 선수들은 “저희를 버리지 마시고 경기위원장직을 계속 맡아 주세요”라며 울먹였다. 기자는 당시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 중에는 정 전 위원장에게 슬로 플레이로 벌타와 벌금을 냈던 선수, 골프규칙을 위반해 벌타를 받았던 선수 등이 있었다.

사퇴를 결심했던 정 전 위원장은 선수들의 간곡한 부탁을 저버리지 못하고 고심 끝에 경기위원장직 사퇴를 철회했다. 하지만 정 전 위원장은 1년 뒤 경기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KLPGA 이사회는 뚜렷한 이유와 설명 없이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당시 KLPGA 주변에서는 “실세인 이영미 이사(현 부회장)를 ‘경기위원 폭행’ 증거를 수집해 상벌위원회에 제소 했는데 무사하겠느냐”고 수군거렸다.

정 위원장 퇴임 후 이영미의 ‘경기위원 폭행’ 사건은 묻혔고 이듬해인 2016년 3월 ‘넘버3’인 부회장까지 올라갔다.

KLPGA투어에서 판정시비가 붉어질 때마다 정창기 전 경기위원장의 재영입설이 나온다. 하지만 정 전 위원장 영입은 KLPGA 이사회에 ‘핵폭탄’이다. 정 전 위원장이 다시 경기위원장으로 위촉되면 이 부회장의 ‘경기위원 폭행사건’의 징계는 피할 수 없는 ‘화살’이 되고 챔피언스 투어에서 위세를 과시했던 다른 이사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KLPGA 이사회에서 주장하는 경기위원장 적임자가 없다는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정확히 표현하면 투어를 잘 이끌어갈 경기위원장은 있지만 자신들의 편에 서줄 경기위원장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KLPGA 이사회의 선택은 하나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웅선 기자  wschoi@focusin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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