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스포츠(양산)=최웅선 기자]한바탕 폭우가 쏟아진 뒤 하늘은 티끌 한 점 없이 파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청명했다.

천성산 꼭대기에서 흘러내린 성불암계곡의 물살은 최종목적지인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긴 여정을 시작했고 거대한 물살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느라 힘든 줄 모른 채 한걸음씩 정상을 향해 내디뎠다.

한손에는 항공촬영을 위한 드론이 모셔진(?) 10kg이 넘는 내 몸만 한 트렁크를 들고 또 한 손에는 삼각대, 어깨엔 카메라를 걸쳤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기 버거워 카메라와 삼각대를 먼저 올려놓고 다시 내려와 트렁크 옮기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3시간 만에 목적지인 성불암이다.

절간이라 하기엔 초라했지만 암자 구석진 자리까지 비구니의 정성스런 손길이 깃들어 천성산 자락과 잘 어우러진 단아한 모습이다.

보살과 대화를 나누던 비구니가 부처의 인자한 미소를 띤 채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한다. 방문 목적을 설명하자 난처한 표정이다. 촬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등산로에 위치한 암자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이곳을 지난다. 비구니가 출타하고 없을 때 등산객들이 들러 작은 불상과 탱화는 물론이고 법당 용품까지 집어간다. 심지어 쌀과 고추장, 된장까지 맘대로 퍼가고 작은 텃밭에 가꾼 무공해 채소까지 싹쓸이 해 간다.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의 행동이라지만 엄연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법(佛法)’에 정진하는 비구니의 작은 암자에는 그 흔한 CCTV도 불당에 잠금 장치도 없었다. 비구니가 기거하는 요사채도 365일 개방이다.

험한 산꼭대기까지 올라온 이방인을 그냥 보내기 미안했던지 손수 밥을 지어 텃밭에 채소를 뜯고 산나물을 꾸려 소박한 절밥을 내왔다. 비구니의 비법으로 무를 아홉 번 쪄 말렸다는 ‘무차’까지 내왔다.

좀도둑으로 몸살을 앓아 CCTV를 설치하거나 잠금장치를 달 법도 했지만 암자를 지나는 나그네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항상 개방하고 있다. 자신을 해롭게 하는 이마저 포용하는 불법(佛法)의 넓은 ‘도량(度量)’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빈손으로 길을 나서려니 측은했던지 암자의 측면은 촬영해도 좋다고 허락한다. 촬영을 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암자가 알려져 더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더 많은 좀도둑들이 암자에 손을 댈까 두려워서다.

민가에서도 멀리 떨어져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가난한 암자까지 벌건 대낮에 ‘야객(夜客)’이 찾아 올 리 없다. 암자를 지나는 일부 등산객들의 몰지각한 행동이다. 아무도 없는 작은 절간이라 기념품쯤으로 생각하고 물건을 집어가고 비구니의 곡식까지 퍼 가겠지만 엄연한 절도행위이자 심각한 범법행위인 것이다.

비구니는 ‘노구(老軀)’였고 몸도 불편했다. 도둑맞은 것을 불당에 채우려면 건강한 사람도 힘든 험한 산길을 오가야 한다. 암자는 등산객들이 힘들 때 편하게 쉴 수 있는 쉼터다. 더 이상 나쁜 손이 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웅선 기자  wschoi@focusinas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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